IT Column

'셧다운제' 게임 생태계 파괴가 시작됐다.

붕어IQ 2012. 4. 2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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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의 힘이 무섭다는걸 한번씩 느끼게 되는 순간이 아마도 한동안 이슈가 되던 것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혀질 때인 것 같습니다.
불과 얼마전의 일이지만, 우리 머리 속에서 멀어진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최근의 이슈 중에서는 너무 과열되게 매스컴의 집중을 받았던 학교 폭력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희 때도 있어왔고 그 전에도 있어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의 커뮤니티처럼 학생들의 커뮤니티라는 것도 나름의 생태계이니깐요.

이번 학교폭력 이슈 때문에 게임쪽이 '셧다운제'를 후들겨 맞은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학교폭력<=>게임 의 상관성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욕설 넣고 피 튀게" 게임업체의 셧다운제 피하기 - 한국일보
오늘은 셧다운제가 시행되고 난 뒤 나타난 게임업계의 부정적인(?) 발전 방향에 대한 기사가 나와서 기가 차더군요.
사실 셧다운제가 시행된다 그럴 때, 어느정도는 예상했었지만 실제로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걱정이군요.



"욕설을 넣으면 될까요?", "선혈부분을 좀 더 빨갛게 하면 되요?"

기사 원문을 보면 위와 같은 문장이 보이고 게임위에 실제로 문의하는 사례라고 합니다.
또한, 등급을 올리기 위해 문의하는 사례가 10여건이 된다고 하지만... 사실 뉴스 자체만으로는 '카더라 통신'의 수준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카더라 통신이더라도 실제로 게임업계에서는 빈번히 일어나는 경우이고, 얼마전 메신저를 통해 이야기를 나눈 게임업계 디자이너 형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문득 예전에 게임업계에서 일할 때, 청소년 등급을 맞추기 위해 아이템의 디자인을 바꾸고, 녹음된 성우의 음성도 재녹음하고 그랬던 기억이 스쳐가는군요... 그때는 그렇게 '청소년 등급'을 원했는데, 이제는 피해가기 위해 오히려 더 노력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씁쓸해지는군요.

욕설을 더 넣고, 더 잔인하고 사실적인 폭력 표현을 유도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렇게 욕설이 더 들어가고 선혈 낭자한 게임은 성인들에게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셧다운제' 때문에 오히려 우리나라의 게임들이 편향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발전해야할 생태계가 무너져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셧다운제, 지키면 되는거 아닌가?

단순히 '게임'을 떠올린다면, '셧다운제' 좋아보입니다.
12시부터 6시까지 청소년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아 과도한 게임을 막아줄 수 있으니깐요.
하지만, 과연 말처럼 셧다운제가 제대로 지켜지고 긍정적인 효과만 있을까요?

[개발자 입장]
그냥 12시부터 6시까지 일정 연령대의 접속자를 강제로 끊어버리면 됩니다.
클라이언트 서버에서 DB로 필터링해서 처리하면 됩니다.
그리고 각 개인에게 알람 하나 띄우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알고리즘에 하나의 알고리즘을 집어 넣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버그의 잠재성을 안고 있습니다.
단순히 코드 몇줄 집어넣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기획자들은 갑자기 끊기게 될 유저들의 마지막 데이터 처리 방법부터 다음 접속시 처리방법, 갑자기 빠지게 되는 인원과 남은 인원들에 대한 밸런스 문제... 생각해야 할 변수들이 엄청나게 늘어갑니다.

굳이 청소년을 주 타겟으로 하는 캐주얼 게임이 아니라면 그냥 '셧다운제'를 빼버리는게 개발과 서비스 양쪽 측면에서 유리합니다.
청소년을 잡느라 사용될 리소스와 시간이 오히려 수익보다 더 들어갈지도 모르고 그것 때문에 개발이 지연되는게 차라리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연속적이지 않거나 짧은 한 게임 단위의 게임이라면 고민할 여유가 있겠지만, MORPG나 MMORPG가 되어 버린다면 개발자 입장에서는 '셧다운제' 때문에 발생할 경우의 수들을 다 대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리소스와 시간을 소모해야 합니다.

제가 기획자라도 뉴스처럼, 그냥 성인등급을 받자고 회사에 요청할 것 같습니다.
(인던 들어가서 한참 진행중인데, 파티원 혹은 공대원이 "셧다운이네요. 저는 이만" 이래버리면... 뒷수습...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청소년의 입장]
'셧다운제?? 에이 귀찮게 엄마 번호로 계정 만들어야하네!'

게임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이정도 이상의 체감 이상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미 게임방에서는 내몰렸고, 이제는 집에서도 게임을 못합니다.
게임을 하고는 싶습니다. 그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죠.
전에도 '셧다운제'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 제가 가끔씩 즐기는 게임의 예를 들었지만, 실제로 청소년들은 "요즘 누가 자기 번호로 게임해요?"라며 당당히 새벽까지 게임을 즐기더군요...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는 저를 바보처럼 느끼더군요...

자... 그럼 이런 청소년들이 성인등급의 게임은 즐기지 않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게임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은 어떻게든 찾아서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찾아서 할 부류였고, 대신 부모님과 나름의 룰을 정하고 부모님의 ID를 이용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성인등급의 게임은 욕설이 더 들어가고 선혈도 더 리얼해집니다.
전에는 어느정도 게임의 선에서 그쳤던 부분도 더욱 과장해서 표현될 지도 모릅니다.
셧다운제 때문에 멀어질거라 생각했던 청소년들이 더 리얼해진 폭력성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셧다운제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해봅니다.
게임을 못하니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할까요? 만화책을 구해보고 영화나 드라마를 구해봅니다.
게임에서 필터링된 수준보다 더 아슬아슬한 장면들과 묘사들이 나타나는군요.
셧다운이고 뭐고를 떠나 이런건 그냥 즐길 수 있으니 마음껏 누려줍니다.
......



게임 생태계를 파괴하는 '셧다운제' 어디까지 갈까...

애플의 아이튠즈를 중심으로한 서비스들를 '에코시스템'으로 가장 잘 꾸려진 생태계
라고 이야기들 합니다.
남들은 처음에는 안될 것이라던 유통구조를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았고, 정화되고 순환하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졌기 때문입니다.

게임도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셧다운제'는 생태계를 이루는 한 요소를 강제로 배제해 버리는 정책입니다.
생태계는 모든 요소가 밸런스를 맞추며 선순환되고 스스로 정화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요소가 빠져버리면 그 생태계는 망가지거나 복원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게임이라는 산업에서 하나의 요소를 강제적으로 배제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피드백으로 위와 같이 청소년들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발생하고 있으며, 그렇게 밸런스가 무너지면 점점 더 선순환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또하나, 우리는 IT강국임에도 스스로 국내용에만 머무르는 정책들이나 쇄국에 가까워 보이는 정책들이 아직도 남아있어 '갈라파고스화' 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많이 완화되고 있는 방향이지만, 이번 셧다운제에 의해 다시 우리 스스로를 가두기만 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 갈라파고스를 향해 가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조건 막아서고 감추는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라지는게 아니라 보이지 않을 뿐이고, 숨어들 뿐이고 양지에서 순화할 노력을 포기하고 음지로 보내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를 뺐었으면 하나 이상을 돌려줄 생각도 해야할 것 같습니다. 대안은 없고 일단 막아서고 빼앗기만하는 방법으로는 선순환을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셧다운제를 다시 철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는 문제점들과 피드백에 대응해서 수정하고 대안들을 고민해야할 시점입니다.
수치에 의한 성과만을 바라보면서 정책을 판단하고 다음 예산을 위해 청소년과 게임생태계를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100분토론 게임중독과 신델렐라법 - 게임 셧다운제 시행에 대한 공방전의 스크린샷을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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