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Column

이통사의 청소년 보호 서비스, 보호인가? 인권침해인가?

붕어IQ 2013. 3. 2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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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뉴스를 보다가 '청소년들이 무슨 죄일까? 청소년으로 살아가기도 참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녀 검색내역 부모에 통보…이통사 인권침해 논란 - etnews

뉴스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이통사들의 청소년 보호 서비스가 검색 내역등을 부모에게 모두 통보되는 것을 두고 청소년의 인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청소년을 유해 사이트나 중독성 강한 게임에서 보호한다는 명목과 그러한 제한이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생각의 충돌인 것이죠. 쉽지 않은 충돌이 될 것 같습니다. 부모의 입장과 청소년의 입장이 상이하게 다를 것이고, 몇 가지의 케이스만으로도 결론을 쉽사리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뉴스에서 말하는 팩트들만을 가지고 판단을 해버린다면 조금은 위험할 것 같아서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서비스는 니즈에 의해 발전된다. 서비스 자체는 문제없다?


저도 이통사들의 수익을 위한 행동들에 대해서는 항상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속히 말해서 '까기'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를 생각해보면 일단 이통사의 '올레 자녀폰 안심', '자녀폰 지킴이', 'T청소년 안심' 서비스들은 논점에서 빼놓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우선 해봅니다. 사용자들의 요구(니즈)가 있었으니 서비스화 한 것이고,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청구해서 받을 뿐입니다. 


'서비스가 있으니 사용하는게 아닌가?', '수익을 위해 인권침해를 조장한다'라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서비스는 니즈에 의해 발생하고 유지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수많은 니즈가 있기 때문에 수익을 위한 수단으로 발현된 것일 뿐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여기서 이통사의 서비스 자체를 논외로 생각해보는 이유는 서비스 자체가 아니라 서비스를 만들어낸 니즈와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좀 더 집중해보기 위함입니다. 서비스 자체가 '보호'인지 '인권침해'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죠. 서비스 자체에 대한 문제는 이미 가입시부터 '부모 동의'라는 것으로 면책권이 준비되어 있으니깐요. 


또한, 서비스는 어디까지는 '선택'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서비스를 '선택'하고 이용하는 방법에서 '보호'와 '인권침해'를 생각해보는게 더 순서가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해보자는 것입니다. 




'선택'에 아이들의 의사는 반영되었는가?


제가 서비스를 대하는 관점을 '선택'이라고 생각해본 이유는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보기 위함입니다. 물론, 부모가 됩니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이 서비스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서비스이고 선택하지도 않은 서비스를 대하는 입장은 어떨까요? 과연 스스로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저는 한번 더 생각을 해봅니다. '보호'라는 명분으로 자녀를 손쉽게 '통제'하기 위한 방법은 아닌가요? 모니터링해서 특정 게임이나 사이트를 제한하고, 사용시간을 제한합니다. 부모의 선택과 보호라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효율적이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봐라. 애들이 통제가 되는지. 눈만 피하고 계속해서 똑같다. 

하지만, 그런 '보호'를 받는 청소년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봅니다. 자신들도 나름의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나름의 판단과 선택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비록 부모의 눈에는 미흡하고 부족하고 잘못된 길로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할지라도 그것 또한 그들의 생각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강요된 선택을 따라야하고 그것에 의해 통제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보호'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간섭과 통제로 느껴지는게 우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이들에게 '보호'라는 명분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선택'의 시점에서도 아이들의 의견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지나가듯이 '너 게임 너무 많이 하면 안돼' 등이 아니라 서로의 약속으로 '책임'을 지워야한다는 것이죠. 안심 서비스에 가입해서 로그를 살펴볼 수도 있다. 책임있게 사용할 수 있느냐? 그 이후에 서로가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제약을 가하겠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용법을 스스로 말하고 정하게 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정말로 로그를 보여주는게 싫다면 서로가 납득할만한 합의점을 찾아봐야 한다는 것도 방법입니다. 결렬될 때는 스마트폰을 못 사주는 것이죠. 그렇다면 아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 '책임'의 범위를 변경하고 양보할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정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 때, 사용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납득이 되지 않을까요? 혹시라도 너 이거 안하면 안사줘. 라고만 말하진 않으셨겠지요?


물론, 아이를 직접 키우는 입장에서는 더 많은 경우들과 복잡한 상황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호'라는 느낌을 들도록 이해시키고 납득시키고 있는지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서로가 합의되었고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보호'가 될 것이고 한 쪽의 일방적인 판단과 결정, 통보에 의한 일이 된다면 '인권침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니 말이죠.




일기를 못 쓰는 아이를 만들지 말았으면...


저도 한참 사춘기 시절에는 여러가지 호기심도 많았고, 혼자만의 생각들도 많이 들어서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곤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생각들도 해보고 혼자만의 비밀도 가지고 싶어지는 나이니깐요. 그러다 어느날 어머니가 책상 위에 놓인 다이어리를 읽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대판 싸웠습니다. 청소도 정리도 필요없으니 방 출입을 아예 자제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당연히 '이노무 시키! 힘들게 밥먹여 키워놨더니!' 카드에 결렬 되었고, 책상 서랍의 열쇠를 사용하고 그 공간은 지키는 것으로 합의(?)를 이끌어냈었죠. 이후로 책상 서랍에서 어머니의 궁금증에 의한 흔적들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적당히 믿어주며 넘어갔습니다.

다만, 그 이후로 제가 일기를 쓰는 방식은 변했다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혼자만의 글과 표현을 하던 것이 남들은 알아볼 수 없는 표현들로 바뀌기 시작했고, 일기를 쓰면서 보안(?)에 대한 걱정이 많아지니 자유롭지 못하게 되더군요.


일기장의 예를 든 것이 조금은 비약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모에게는 이미 지났으니 별 것 아닐 수 있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상당히 크고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으며, 제약을 받게되면 오히려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음지로 내몰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입니다. 이통사에서 제공하는 안심 서비스들의 내용을 다시한번 떠올려봅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의 로그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여자아이나 남자아이의 싸이나 페이스북을 방문하는 것도 다 들켜버립니다. 은연중에라도 너 누구누구 좋아하니? 그 아이 사진보니깐 껄렁껄렁 하겠더라 조심해서 만나... 라고 먼저 물어보면 그 아이가 받게될 느낌과 반응은 어떨까요? 혼자만의 일기장을 들켜버린 것과 별반 무엇이 다른가요?


그렇게 자신의 행동들이 다 들어나버리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생각해봅니다. 저만해도 일기장을 서랍으로 숨겼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을 지키는 것이 소중했으니깐요. 그렇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다르게 봐야할까요? 똑같이 로그를 숨기고 싶어지지는 않을까요? 서비스의 눈을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내거나 오히려 눈을 속이게 되는게 먼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걱정과 보호라는 어른들의 시선이 아이들을 일기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점점 숨어들게 만들 수도 있지는 않을까요?




유해 사이트?


이런 안심 서비스나 청소년 규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의 청소년 시절을 떠올려보고 비교를 해봅니다. 물론, 세상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왜? 그것들에 그렇게 관심을 가졌나하는 부분입니다. 궁금하니깐요. 하지말라니 더 궁금해지는깐 별 것 아닌데도 괜히 큰 의미를 두게 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유해사이트?? 'sex.com'을 쳐봅니다. http://warning.or.kr/로 연결되며 필터링됩니다. 어른들마저도 유해사이트로 분류된 곳은 사이버경찰청에서 계속해서 필터링해주고 있어서 접근도 못합니다. 물론, 전부 필터링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다른 루트를 통해서 찾아가는 것이 아이들(물론 어른들도;;)입니다. 난데없이 'sex.com'을 거론한 이유는 유해사이트? 유해하다는 판단의 기준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을 해보자는 의미입니다. 과연,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범위는 누가 정하는 것인가요? 로그를 보고 이것을 유해하니 차단해야지! 라고 판단하는 것은 누구의 기준일까요? 청소년들이 그것을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니 해줘야해. 보호해야해만 해. 라고 판단하고 있는 누구인가요? 


그렇다면, 반대로 청소년들은 왜 유해사이트라고 불리는 곳들을 찾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궁금하니깐! 

요즘은 청소년들에게 어떤 성교육이나 폭력성에 대한 기준을 가르쳐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랄 때에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지금은 성교육이 아이들이 원하는 수준까지 충분할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폭력성이요? 게임을 통해 아이들이 망가진다구요? 친구들과 아도겐~과 요가파이어~를 날리며 장난은 쳐봤어도 게임이나 영화에서 본 것들을 싸움박질에서 사용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 때는 달랐다? 홍콩 느와르가 판을 치고 조폭 영화가 싹을 틔웠으며, PC통신의 힘으로도 원하는 자체 성교육(?) 교보재 정도는 충분히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충분히(?) 궁금증을 해결하고보니 시들해지더군요. 이렇게 말하면 저희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적당히 아시면서도 지켜봐 주셨다고 그러시더군요. 이미 형들 둘을 겪으시면서 내공이 쌓이셨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적당히 저를 믿어주시기도 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가 조금은 다르게 확장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TV에서 흘러나오는 쇼프로그램이나 드라마들이 더 무서운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또래의 아이들이 스타가 되어 화려한 모습으로 티비 속에 있습니다. 우상이며 그들의 모습은 그룹에서 공통적인 관심사가 될 뿐 아니라 나름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돌들이 성인인 제가 보기에도 민망스러울 의상으로 관능적인 코드들이 담뿍 담긴 안무와 노랫말이 흘러나옵니다. 남자 아이돌은 한껏 강하게 남성성을 표현하며 폭력적인 코드들을 뿌려대고 있습니다. 드라마요? 미화되는 것도 좋지 않지만, 드라마를 보면 불륜이 있고, 어긋한 사랑이 넘치고, 배신이 있습니다. 물론, 현실성이 없는 것들도 아니지만, 너무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지는 않을까요? 저는 이러한 코드들이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일상적인 수준으로 보여지고 오히려 우상화 되어가는게 더 무섭고 걱정이 되는데 말이지요. 


유해사이트 몇 개 더 차단하는거보다 쇼프로를 같이 보며 이런건 이런 의미가 포함될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매체들을 전부 끊어서 그룹에서 소외당하는 것도 안될테니 차라리 잘못될 수 있는 인식을 조금씩 알려주는건 어떨까? 라는 생각인 것이죠. 아이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코드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해버리는 것보다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이렇게 보일수도 있다는 것만을 알려주는 것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유해하다고 판단하는 것. 이것 또한 누구의 기준이며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시금 반성해봐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게임 중독?

<글의 예시일 뿐, 특정 게임을 비하하거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이미지가 아님을 밝힙니다.>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청소년들은 PC에서는 내몰리고 개인화된 모바일이 또다시 몰이 당한다고 생각되는군요 왜 아이들이 모바일 게임에 더 집중할까요? 게임은 좋고 하고 싶은데, PC에서는 눈 속여가면서 해야되고 개인화 되어있으니 속이기 쉽기 때문에 대안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플랫폼의 특징이나 게임성이 아닌 큰 현상 속에서만의 이야기입니다. 게임과 관련된 이야기는 별도로 이만큼의 이야기를 또 해봐야할 것 같아서 평소에 가진 생각만 짧게 정리해봅니다. 


아이들에게 게임에 대해서 약속을 하면서 왜 시간 단위로 결정을 할까요? 과연 왜? 딱 그만큼만 해야 좋으니깐? 다른 행동에 방해가 되니깐? 게임을 해보면 시간이 참 잘 갑니다. 이것도 해야하고 저것도 해야하고 새로운 목표들이 계속해서 생기고! 하지만, 그 시간 안에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을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이 이만큼 남아있는데 시간이 다되어서 그만??? 똥싸다가 시간됐으니 나와! 라고 하면 어떤 기분입니까?;;; 한참 집중해서 스트레스를 쏟아내고 재미를 느끼는데, 시간 때문에 강제되고 그만두어야 한다면 오히려 해소하는게 아니라 더 많이 쌓이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아니면 벼룩을 상자에 가두어 두듯이 그 만큼의 해소만 하라고 한계를 그어버리는 것이죠.


시간 단위가 아니라 목표 단위를 주는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가 애니팡을 합니다.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그렇다면 아이에게 2시간 안에 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하게 합니다. 몇 점이 되건 몇 등이 되건 시간 안에 집중해서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해 게임을 즐기면 됩니다. 물론, 아이들은 욕심을 내고 더 많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목표를 산정하겠지요. 그것을 정리하고 함께 선을 조절해 가는 것이 더욱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목표가 있습니다. 만약, 1시간만에 목표를 이루면 아이는 자랑을 하겠지요. 그러면 함께 다음 목표를 정합니다. 당연히 낮은 목표에서 시작해서 시간 안에 완료하면 다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높여가는 능력도 발달할 수 있습니다.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얻어지는 만족감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되어도 다음 시간까지 목표를 다시 생각하고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완료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게임 능력의 부족이거나 목표를 잘못 설정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죠. 다음에는 더 집중하거나 다른 방법을 통해 목표를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을까요? 목표 설정과 완수, 피드백, 그리고 만족감. 단순히 게임을 시간을 정하고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게임이 가지는 학습효과도 함께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임이 애니팡만 있냐? 물론, 아닙니다. 인던이라도 들어갈라치면? 상황에 의해 30분이 길어질 것 같다. 그러면 게임에서 30분을 초과한 것을 다음에 다른 행동이나 다음 게임시간에서 보상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유도리, 즉 운용의 미도 발휘해야합니다. 오늘 다른 렙업등으로 1시간을 세이브하고 내일 2시간 조금 넘는 던젼에 3시간을 두고 도전하는 겁니다. 물론, 유도리에 대한 부분도 학습이라 양보만 하다가는 당연한 것이 될테니 목표설정에 대한 것들부터 다시 이야기 해봐야겠지요. 

시간 제약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그룹을 벗어나야 한다면? 아이들에게 '책임'에 대한 면죄의식을 심어주는 않을까요? 어른이 그만하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게임을 벗어납니다. 게임 따위니깐? 그렇게 책임의식이 없어진다면 게임 이외의 것들에서도 똑같은 마음이 싹트지 않을까 더 걱정이 되는군요. 


물론,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절대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또한, 정도가 심한 아이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점점 그렇게 정도가 심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봐야한다는 것이지요. 물리적인 양으로만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 속에 무엇이 있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고 해결해야할 것인지 질적인 판단을 할 것인지 말이지요.




청소년은 분명히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도 보호받고 있다고 느껴야한다.


청소년 시기에는 사춘기도 겪으며 그들의 자아를 완성해가는 시기입니다. 물론, 호기심과 궁금증들도 많이 늘어납니다. 그것들을 건전하게 해소시키지 못하니 관심이 더 커지는 것이고, 숨겨놓은 보물을 찾듯이 그 시기에 가질 수 있는 비밀과 특별함에 대한 의미 가 더 커지게 됩니다. 오히려 어두운 곳으로 내몰고 그것들을 더 키울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궁금증과 에너지는 터져나오는데 하지마라 하지마라 강제만한다고 그 에너지와 궁금증이 사라질까요? 작은 돌파구가 있다면 거기에 오히려 더 집중해서 쏟아내게 되는 건 아닐까요?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일이야... 나이가 들어서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지 모릅니다. 이미 겪어본 어른들이 하는 말이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이해가 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왜 그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나 모르겠습니다.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해봐야하고 자잘한 상처들을 안으며 성장해야하는 것이죠. 저는 그 과정들을 겪는 걸 어른들의 기준과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이 진정한 '보호'인지를 되묻고 싶습니다. 뛰어놀지도 못할 정도로 빡빡한 울타리 속에서 넣어두고 '보호'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믿으라고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자잘한 실수도 상처도 겪어보면서 마음대로 뛰어놀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뒤를 돌아보면 부모라는 큰 울타리가 있었더군요. 기술도 발전하고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도 분명히 다릅니다. 그에 따라 아이들을 보호해야하는 범위도 달라졌고 방법에도 차이가 발생할 것입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청소년은 청소년이라는 것입니다. 그 나이에서 겪어야 할 것들과 그들의 생각들도 분명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려서 어른의 기준으로 그들의 세계를 판단하고 잘못되었고 위험하다고 규정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다시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이통사의 청소년 보호 서비스. 아직도 이게 보호라는 명분이 되건, 인권침해가 되건 중요한 문제인가요? 서비스를 두고 보호냐 인권침해냐 하는 것은 이미 서비스에 책임을 전가해버리려는 행동은 아닌지 걱정되는군요. 아이들이 이미 이런 강제된 서비스로 '보호'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게 무섭습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보여진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과연 어떤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요?


끝으로 '너도 부모가 되봐라' 라는 말을 많이 들을 것 같습니다. 

말로는 뭐든 못하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최소한 위에서 제가 이야기한 내용은 지킬 것이고, 그러고 싶기에 항상 고민하고 반성하며 글을 썼습니다. 준비와 현실은 다르겠지만, 굳게 마음 먹다보면 조금씩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는 꼭! 아이와 함께 아이가 좋아하는 연애인의 콘서트장에 갈 것입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공연이나 콘서트장에도 함께할 것이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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