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싹하진 않아도 충분히 잘 하고 있습니다. 진실된 토로에서 얻는 공감과 위안? 하지만...
11월 세 번째 책은 '싹싹하진 않아도 충분히 잘 하고 있습니다'로 결정했다.
딱히 이유는 없다. 책을 반납하고 신간 코너에서 나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10월에도 11월에도 조금은 무거운 책들 때문에 호흡이 더뎌진 것을 떠올리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그렇다.
제목이 절반을 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뭔가 불만을 토로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흔을 앞두고서야 알게 된 이야기들... 이미 마흔을 넘긴 입장에서 나의 30대 후반과 비교해보고도 싶었고 한번쯤 그 토로를 들어봐 주고 싶어졌다. 내가 뭐 아주 잘나서 그렇다는게 아니라 그냥 그런거 있잖아? 수다 떨어주고 들어주는 것, 책으로 이야기하고 난 읽어보고 싶었다.
어? 내 이야기야? 가끔은 있을 수 있는 또다른 길 위에서
책을 읽으며 묘한 부분에서 공감을 하게 됐다.
프로 퇴사자에 프리랜서에 나름 불만을 느끼는 포인트와 토로하는 방식이 비슷하다. 아니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혹은 한 두번은 느껴본? 아니면 해보고 싶은 경험을 편안하게 풀어낸다.
분명히 분노하고 쌓인 것들이 많지만 적당히 무게감으로 표현해낸다. 그리고 묘하게 일상적이고 누구나 이해할만한 상황이 펼쳐져 이해와 공감이 쉬운 느낌이 들었다.
다만, 편해서 쭉 읽어가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느낌이 좀 들었다.
글의 호흡도 스크롤 포함해서 짧게 2~3분 길게 5분 정도의 호흡을 가진다.
아무래도 책을 상정하고 개요를 잡고 글을 모은 느낌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인터넷 등에 올린 글을 모아놓은 느낌이랄까?
퇴사 이야기를 중심으로 불합리한 구조와 사회, 대우... 특히 여자, 30대의 미혼 여성이 받게 되는 상황을 잘 그려낸다. 그리고 싹싹하지 않게 대응한 모습도 조곤조곤 잘 풀어낸다. 때로는 시간이 지나 뱉어내는 후회같은 술회도 귀엽게 느껴진다.
그런데 글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드는 생각이... 잘했다. 잘했다. 잘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광고대행사 AE를 시작으로 마케터 등... 비슷한 입장을 겪어봤고 30대 초중반에 이미 유사한 길을 택했었다. 물리적인 시간의 관점에서는 내가 경험이 적을 수는 있겠지만 싹싹하지 않은 성격에서는 내가 좀 더 앞서 있었나보다. 싹싹하진 않아도 충분히 잘 하고 있습니다처럼 나도 성질머리 때문에 부딪히는 경우도 많았고 이해와 납득이 되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다. 아니 그보다 그런 상황을 계속 부딪히며 소모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결과적으로 싹싹하진 않아도 충분히 잘 하고 있습니다에서도 싹싹하지 않아 회사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그런다. 다만 그 과정에서 조금은 자신이 싹싹하지 않아서 그랬다는 톤으로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더 부담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나는 다행히(?) 주변에 나와 비슷한 프리랜서들이 꽤 있어서 너무 고독하지는 않았다.
남들과 다른 생활 방식, 경제 방식,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목적지를 향해 잘 닦인 선로를 달리는 기차에서 내렸다. 아니 스쳐가기 바쁜 정거장에 들러서 다음 기차를 기다리며 동네 산책을 하는 여유를 챙기게 되었다고나 할까?
싹싹하진 않아도 충분히 잘 하고 있습니다.
응. 잘하고 있다. 그렇게 자신을 반짝반짝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소중한 시간을 향유해주면 된다.
신간 코너에서 집어와서 그런지 최근에 자주 보게되는 위안이라는 코드, 공감해주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하지만, 이미 30대를 지나버린 입장, 비슷한 경험으로 40대를 넘겨버린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도 보인다.
20대와 30대들을 위한 공감과 위로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그렇게나 싫어했던 회사에 아직 묶여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조금은 자극적일 수 있는 상황만을 글로 풀어내는건 아닐까? 글로 책으로 풀어내면서 실타래를 풀어내듯 응어리를 지워냈길 바래본다.
최근에 읽었던 '밥보다 책'이 스쳐간다.
30대 후반전의 관점보다 조금 더 여문 40대 후반, 반백을 눈앞에 둔 관점도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와 소재는 다르지만, 연령에 따라 소재를 다루고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톤의 차이를 생각해보게 된다. 둘을 딱히 비교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둘 다 둘만의 장점이 있다. 이미 겪어본 이야기이고 나도 수다로 많이 떠드는 에피소드들이 교집합 되었기 때문인 지, 싹싹하진 않아도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보다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책들을 소소히 일상과 접목해 풀어내주는 밥보다 책이 더 기억에 남는다.
회사 생활이 답답하고 불합리할 때, 이미 겪었고 용감하게 사표를 던진, 그러고도 또다른 길 위에서 새로운 자신의 모습과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 그런 작은 위안과 공감을 찾고 싶다면 싹싹하진 않아도 충분히 잘 하고 있습니다를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이런 소소한 토로도 충분히 수다가 되고 공감이 되고 힐링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40대, 미혼 남성, 프리랜서, 가난한 글쟁이, 도 조금은 옛날 생각에 잔잔한 미소를 띄워보는 책이었다.
[11월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