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Movie + Ani

만추, 긴 엇갈림 속의 한 순간... 그리고 또다시 엇갈림...

붕어IQ 2011. 3. 2. 00:43
반응형


만추, Late autumn...
호불호가 갈린다는 이야기만을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영화의 톤이 끌려서 보게된 영화다.
시크릿가든도 보지 않았고, 탕웨이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늦은 겨울의 극장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제목에 나도 모르게 스크린을 마주하고 있었고,
큰 굴곡도 없이 잔잔한 그들의 시간 속으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남자, 사랑을 팔지만 '사랑'할 줄 안다.

현빈이 연기한 '훈'은 속히 말하는 제비로 등장한다.
처음부터 불륜의 주인공이 되어 도망치는 모습과 그 와중에도
 외모에 신경을 쓰는 모습에서 값싼 사랑을 팔고, 직업 정신에 
껄떡거리는 이미지로 비춰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남자...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스럽다. 
자신감있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사람을 감싸준다.
그러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과 상대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면 제비가 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감정에 따라 정직하게 행동한다. 
그러면서 상대의 마음을 노크하고 노크하고... 슬며시 들어가 크게 안아준다.




여자, 아픔으로 얼룩진 마음에 추억을 남기다.

탕웨이가 연기한 '애나 첸'은 아픔을 갈무리하는 여자이다.
상황에 의한 살인으로 7년의 감옥살이를 하게되고,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3일간의 시간을 얻는다.
처음부터 시크한 표정과 세상을 향해 닫혀진 모습은 
마음의 어둠을 대변해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지는 그녀의 아픔은 남자에 대한 배신과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여자라는 것... 
아주 소소할 수 있는 것을 가슴에 웅어리지우고 갈무리해둔다.
그렇기에 후반부에 보여주는 그녀의 잔잔한 미소들이 더 크게 
와닿는가보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상처입은 마음은 배경이 된 시애틀의 안개와 그렇게 맞닿아있는 것 같았다.



남자, 여자... 엇갈리다.

<두 사람의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듯한 장면>

이 줄은 세상인데 이 세상 아무곳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꽃일 확률.. 그 계산도 안되는 확률로 만나는게 인연이다

- '번지 점프를 하다' 中에서 - 
지금의 내가 인연과 사랑에 조금은 목말라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둘의 만남을 지켜보면서 스쳐가던 대사이다.
그런 인연으로 시작된 훈과 애나는 '만추'가 만들어내는 감성에 이끌려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
엇갈린다.

한정된 시간과 자유 속에서 마음까지 닫힌 여자와 자유분방하고 호기심 가득한 남자.
시작부터 엇갈리는 상황으로 시작된 그들이지만, 인연은 그들의 접점을 만들어준다.
물론, 훈의 적극적인 모습이 만들어내는 부분들이 많기는 하지만 훈에게서 그런 모습을 만들어내는 애나의 행동들도 그들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Do you want me?"
우연한 몇번의 마주침에 애나가 훈에게 뜬금없이 날리는 대사. 
그리고 그들은 둘만의 장소(?)로 향하기도 하지만, 애나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7년의 감옥, 지워지지 않은 응어리,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보이는 가족들의 현실적인 모습들...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 쇼핑도 해보면서 일탈을 시도하지만, 
현실을 일깨우는 전화에 다시 마음을 닫는 애나...
그런 틈 속에서 애나는 도피를 원했고, 감정보다는 육체적 충족을 위한 시도를 하지만 
스스로를 감싼 마음의 족쇄들은 생각보다 두터웠나보다.
짧은 장면이지만, 애나의 마음 속 외침들이 조금은 새어나오는 장면이라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둘의 일상적인 데이트.
쉽게 접점은 만들어지지 않지만, 범퍼카를 타던 중 멀리 보이는 다른 연인들의 상황을 두고 서로는 조금씩 알아간다.
타인의 행동에 덧입혀지는 훈과 애나의 대사들은 둘의 입장과 마음을 엿보여준다.
호기심 가득하지만 항상 따듯한 미소를 머금은 듯한 훈과 
조금은 부정적인 시선이지만 그래도 사랑을 믿고 싶어하는 애나...



"하오"...   "후아"...
늦은 시간, 둘만이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둘은 처음으로 서로 소통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중국어로 말하는 애나.
'좋아요, 싫어요'만을 배우고는 알지도 못하는 중국어에 화답하는 훈.
언어로는 분명히 이질적인 대화들이지만, 그들은 분명 소통한다. 
의미가 전달되지 않고, 훈의 대답은 전혀 상황에 맞지 않았을지라도 
애나는 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조금은 닫혀진 마음을 열어간다.
그것이 훈을 향한 열림일지도 자신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인지는 몰라도... 
애나는 그렇게 응어리진 한 부분을 자신의 밖으로 덜어내며 처음으로 미소를 보여준다.
대화는 논리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만, 
관심을 가지고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감싸줄 수 있구나...


그리고 또다시 상황에 의한 엇갈림.
자신의 모텔에서 기다려달라는 훈, 아닐거라며 기다려주는 애나. 
하지만, 그들의 앞날을 예고하듯 그들은 또다시 엇갈린다.


훈은 애나 어머니의 장례식에 몰래 찾아가고 그 곳에서 애나 마음 속 그늘의 원인을 알게된다.
거짓일지라도 훈은 애나의 편이되어 애나 대신 애나의 응어리진 원망과 안타까움을 표현하게 된다.
전혀 개연성 없을 법한 포크... 하지만, 상황을 대입하면 애나의 마음을 대변할 수도 있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그 상황... 애나 속에 깊게 응어리진 그 남자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더욱 중요할 것 같다.




"당신이 다음에 나올때 이곳에서 만날까요?"
짖게 드리운 시애틀의 안개는 그들의 앞길도 알 수 없게 만들어 놓는다.
힘들게 마음을 열어가는 애나의 상황과는 다르게 꼬여만가는 훈의 상황.
그들의 엇갈림은 또다시 그들의 행로를 멀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훈은 그 상황마저도... 마지막까지 애나의 마음을 감싸주며 자신의 상황도 덮어놓는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짧은 키스.
그들의 상황과 마음의 흐름을 지켜본 관객들이라면 누구라도 안타깝고도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까?
애나의 작은 손짓과 눈길에도 집중하게 되며 그녀의 애틋함과 함께 감정의 되살아남을 지켜본다.
하지만, 지켜보고만 있기에는 너무 애틋하다...


커피를 뽑아오는 밝은 애나의 표정이 안타까움의 절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잡힐 듯 시선에 잡히지 않는 훈의 모습, 영문을 모르게 사라졌기에 더욱 당황하는 애나...
절묘한 카메라 워킹이 애나의 심리적 상황을 절묘하게 따라가준다.
망연자실 커피를 놓치는 애나의 모습으로 페이드 아웃...


그렇게 2년이 흐르고 애나는 훈과 헤어진 그 곳(Keystone Cafe)에서 훈을 기다린다.
안과 밖이 보일 듯한 곳에서 막연한 기대감의 끝을 잡고 있는듯한 애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다급한 마음으로 돌아본다.
몇 번의 소리가 들린 후, 
애나는 추억을 향한 시선으로 "안녕, 오랜만이네요." 이라는 말을 하고 영화는 끝이난다.
애나... 
깊은 가을, 엇갈림 속에 스쳐갔던 순간들을 추억으로 간직한다.



잔잔하다. 하지만 지독하게 치열하다.

굴곡도 없고, 큰 이벤트도 없다.
영화는 단지 3일간의 평범한 시간들을 표현한다.
또한, 영상도 음악도 튀거나 인상적인 부분들이 없을 정도로 영화 전체에 녹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집중하게 된다.
현빈과 탕웨이가 만들어내는 캐릭터와 그들의 심리적 변화에 몰입하게 된다.
잔잔하기에 가능한 일은 아닐까?

특히 애나의 상황과 심리적 변화를 조금씩 풀어가는 과정.
그것을 도와주는 훈의 존재.
애나의 아픈 부위를 지독할 정도로 파고들지만 항상 훈이 옆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감싼다.

만추... 사랑에 대한 반추...

감성이 충만해질 수 있는 만추의 시애틀 안개 속에서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여자의 감성을 지독하고 치열하게 이해하는 김태영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깊은 가을의 스쳐감, 엇갈림, 이어짐, 그리고 다시 엇갈림... 
복잡한 심리를 절제된 연기로 표현해준 현빈과 탕웨이에게 마음 깊이 박수를 보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