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Column

'좋아요'만 있는 페이스북, 진정한 소통은 어려울까?

붕어IQ 2013. 3. 13.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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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서 누군가가 쓴 글을 읽다가 한참동안 생각에 빠졌다.

페이스북에는 '좋아요'만 있기 때문에 '싫어요'의 의사를 표시하기 힘들다. 그래서 진실된 '소통'은 힘들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맞는 말이다. 분명히 동감하고 '소통'에 대해 좀 더 고민해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뭔가 계속 맴돈다. '소통'은 무엇이고? 소셜미디어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혼자만 생각하고 묵혀두던 생각들을 조금 덜어봐야겠다.

일기 쓰듯 편하게 쓸 예정이라 좀 까칠할지도 모르겠다.




페이스북, 왜 '싫어요'가 없을까? ... 난 없는게 좋은데?

<'싫어요'가 과연 Thumb down의 의미로만 작용할까?>



여러가지 의견들이 많을 것이다. 마케팅적 관점에서 접근도 많이하고 분석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런 분석들이 오히려 생각을 어렵게 만들고 페이시북의 정체성을 헷갈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누구 좋으라고???


툭~까고, 나부터 생각해본다.

뉴스를 보고, 일상을 살펴본다. '싫어요' 버튼이 간절한 순간이 넘쳐난다. 그런 일상에서 휴식이나 즐거움을 찾기 위해 시간을 쪼개서 지인들 혹은 관심있는 소식을 듣기 위해 페이스북을 찾는다. 굳이 이런 소중한 시간에 '싫어요'를 눌러대며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는 않다.

타임라인, 스쳐가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욕을 하지 않는다면 그냥 흘려버리게 된다. '싫어요'를 누르는 순간부터 나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고, 그 대상과 관계에 한 걸음 깊어져야 한다. 왜?? 반대로 생각해봐라. 누군가가 나를 싫다는데 나는 기분 좋을까? 쉽게 생각해서 남의 뺨을 때렸으면 내 뺨도 내놔야 한다는 뜻이다.

난 즐겁고 싶고 새로운 정보들을 얻기 위해 페이스북을 이용한다. 

굳이 내 뺨 내놓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싫어요'가 없다고 투덜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뺨을 때리는 일이고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면, 오히려 더 조심해야 되는 것 아닌가? '싫어요' 버튼 한번 툭하니 눌러놓고 가버리면 남겨진 사람은? 뺨 맞았는데 누가 기분 좋은가?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이 사람이 왜 좋아요를 눌렀지?'라고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은 별로 없다. 그냥 기분 좋으면 되는거다. 하지만 반대로 '싫어요'만 눌러 놓으면 어떨까? 온갖 생각들이 머리에 들어차게 되지 않는가? 일반화를 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렇다.

정히 못참고 흘려버리지 않을 상황이라면, 댓글로 '싫어요'를 쓰면 된다. 그 때부터는 단순히 버튼 한번이 아니라 책임이 따르는 것이고, 서로가 뺨을 내놓고 소통을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이뺨저뺨 치다보면 결론이 나겠지.

자, 다시 생각해보자. 

'싫어요' 버튼이 없어서 '좋아요'만 꽉찬 편향된 페이스북이고 그래서 진정한 소통이 되지 않는다?

그럼, 스스로에게 다시한번 물어보자. '좋아요'와 '싫어요'가 같은 비중의 의미인가?


'싫어요' 버튼. 대개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경우를 보면, '누르는 입장'일 경우들이 많다.

물론 염장질 뽁뽁해대는 글에 장난스런 용도로도 쓰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들이라도 '싫어요'를 받는 입장이 되어보면 어떨까? 정말 눈살을 찌푸리는 글들이나 만만한(?) 기업들의 페이지에는 나도 가끔 '싫어요'를 떠올린다.

하지만, 선택적으로 '싫어요'를 할 수는 없다. 언제나 내 뺨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난 페이스북을 쓰면서 '싫어요' 버튼이 없는게 좋다.

휴식하며 기분전환하러 와서 뺨 내놓고 다큐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한 경우는 내가 좀 더 손을 내미는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싫어요'에서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붕어IQ'인 '나'가 페이스북을 사용하면서 '싫어요'가 필요없는 이유이다.

왜 굳이 나의 이야기라고 밝힐까? '싫어요'가 필요하다고 말할 사람들의 이유도 삼만개는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이건 '페이스북'을 스스로가 어떤 매체(플랫폼)로 바라보고 활용법을 찾아가느냐의 문제라는 뜻이다.

백인백태, 천태만상. 페이스북을 쓰는 목적과 방법을 규정할 수 없다. 사용하는 사람들만큼의 목적과 이유가 있지 않을까?




페이스북이 뭐에요?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카카오스토리... 참 숨가쁘게 내달리고 적응하도록 내몰린다.

하지만, 이용에 급급해서 그러한 매체들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있는가?

나는 가끔 지인들에게 "페이스북이 뭐에요?"라고 물어본다.

아주 다양한 대답들이 나오는 편이다. 당연히 그건 그 사람에게의 '페이스북'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게 해주는 페이스북인 것이다. 당연히 거기에 맞춰 행동방식도 결정이 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페이스북은 '판(Tool)'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크 주크버그가 "페이스북은 이렇게 써라!"고 규정 지었나? 

놀 수 있는 판만 깔아놓은 것이다. 그 위에서 날뛰고 노는 것은 사용자의 몫이다. 

놀이(contents)를 찾고 룰(rule)을 만드는 것도 사용자가 해야한다. 자유도가 높은 게임 같다랄까?


이런 자유도 높은 '판' 위에서 나는 무엇을 할까?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놀이를 찾고 자신만의 룰을 만들어가면 된다.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똑같은 '자유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난 이런 룰로 이렇게 즐길거야!'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 룰을 적용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WOW(World of Warcraft)같은 게임을 하면서 "공략에서는요.", "이럴때는 꼭 이래야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는 것이다. 가이드대로만 하는 게임, 가이드대로만 사용하는 페이스북이 재밌나?


'싫어요'가 필요없는 경우, 페이스북이 자유도 높은 '판'이라는 말.

왜, 구구절절히 이런 말들을 하고 있을까? 

'소통'은 여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소통'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들고파자면 한도끝도 없는 우물 같겠지만, 다시 쉽게 생각해보자.

"페이스북에서 내가 원하는 '소통'은 무엇인가?"

......????.......

개그 칠려고 온 사람에게 다큐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는가? 

진지한 대화를 하려고 온 사람에게 개그나 치고 있지는 않은가?

"페이스북에서는요. 이래야해요."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페이스북'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을까? 


페이스북에서 '소통'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단지 내가 원하는 '소통'이 아닐 뿐이다.

내가 원했던 기대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소통'의 부재를 느끼는 것이다.

한번은 솔직해져보자. 

"정말 아닌가?"




'좋아요'만 넘쳐나는 가식과 이미지 월드? 



사람들이 페이스북의 단점을 이야기하면서 많이 이야기하는게 있다.

'좋아요'만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좋아요'를 받기 위한 글들만 넘쳐난다고... 

사람들이 듣고싶은 이야기, 부러워할 이야기, 보고싶어 하는 것들만 이야기한다고...

불편을 유발하지 않는 글들만 올라온다고...

정말???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유주얼서스펙트'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를만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그 타임라인은 누가 만든거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싶고 듣고싶은 것에 끌리기 마련이다.
그게 무의식적으로 표출되어 만들어졌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자신의 타임라인을 다시한번 살펴봐라. '좋아요'를 원하는 글들이라고 말해버리는 글들이 혹시나 자신이 보고 싶은 글들은 아닌지 말이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 
그렇다면, 남들에게 '좋아요'만 받을려는 가식적인 글? 타임라인에서 덜어내면 된다. 쉽다 안보면 된다.
소거된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타인의 눈을 신경쓰며 글을 올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지? 
나도 누군가에게 '좋아요'로 남고 싶은 생각은 아닐까? 모순에 빠진다.
진정 내가 원하는 '소통'을 찾고 싶다면, 그렇게 타임라인을 관리하면 되는 것이다. 
선택하라.

자~ 여기서 또다른 질문이 발생한다.
"어쩔 수 없다"
학교, 회사, 동호회, 친구들... 그룹이 있고, 인맥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반문한다. 진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상황들은 자신이 뛰어놀고 있는 페이스북과는 다른 '목적'이나 '제약'을 동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눈치보며 이미지 관리해야 할 부담감이 생기기 때문에 거부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정해야된다. 그냥 그대로 놔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지는 것이다.
계정을 하나 더 만들어서 목적에 맞게 인맥을 묶고 따로 관리해라. 쉽지?
아니면, 원하는 그룹을 만들고 확실히 비공개로 만들고 관리해라.
번거롭다고? 몸이 편할지, 마음이 편할지는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가져라.
인맥도 모나지 않게 잘 관리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들만 보고, 어쩔 수 없는 상황도 피하고 싶다?
(모대기업 홍보팀 상무님이 회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바라는 마음과 일치하는구나....)
해봐서 알겠지만, 현실에서는 한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어찌보면 백인백태, 천태만상의 정글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들을 일관되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책임을 가져야 한다.
책임을 단순히 페이스북의 잘못으로 떠넘기지는 말자는 것이다.

다시한번 반문해본다.
페이스북이 과연 '진정한 소통'을 하기 어려운 곳인가?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놀이판에서 자기의 룰을 명확히 하고 놀이를 충분히 즐기고 있는가? 
아니면 휩쓸려 가이드대로 플레이하며 다른 플레이어를 탓하거나 놀이판을 탓하고 있는가?



소통? 페이스북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



소통. 커뮤니케이션. 뭘까?
커뮤니케이션의 단계 이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1단계 Intra Comm : 1인. 개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
- 2단계 Inter Comm : 2인. 개인과 타인, 둘 사이에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 
- 3단계 Group Comm : 2인 이상. Inter Comm을 포함하기도 하며 2인 이상의 그룹에서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
- 4단계 Mass Comm : 불특정 다수. 매스컴이라 불리는 매체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

자~ 이 이론을 살짝 간략화해서 페이스북에 대입시켜보자.
- 채팅 : Inter Comm ~ Group Comm
- 그룹 : Group Comm
- 페이지 : Mass Comm
- 타임라인 : Inter Comm ~ Mass Comm

우리는 정리해서 명확하게 인지하지 않았을 뿐, 페이스북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커뮤니케이션(소통)의 거의 모든 단계들을 소화해내고 있는 것이다. 오!!! 
물론, 표면적으로 보이는 부분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저기서 빠진게 있다. 
눈치 챘나? 바로 Intra Comm이다. 
일상적인 소통에서도 Intra Comm은 티가 나지 않는다. (혼자 비맞은 중처럼 중얼중얼 거리며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일상에서도, 페이스북에서도 보여지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소통이 왜 중요할까?

Intra Comm이 1단계에 놓인 이유는 소통을 위한 메세지의 생성, 소통방식, 소통범위등에 대해서 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게 확고해야 2단계부터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지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난데없이 커뮤니케이션 단계이론이 나와야 하는 것일까?
Intra Comm은 위에서 꾸준히 말해온 자신의 '선택'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 자신이 듣고 싶은 것,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 모든 것의 기준이 된다.
페이스북이라는 '판' 위에서 어떤 캐릭터를 만들고 어떤 모험을 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과 파티를 맺을지 솔로 플레이를 할 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대화를 통해서 말이다.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왜자꾸 자신의 '선택'만 이야기할까?
다시한번 타임라인을 살펴보자.
그 하나하나에는 어떤 Intra Comm이 숨어있을까?
말그대로 페이스북의 표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지 않는가?
그렇다. '역지사지'라고 하면 될 것을 괜히 애둘러 왔을지도 모르겠다.

페이스북에서의 소통.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상대의 Intra Comm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을까?
표면적으로 보여지는대로만 보고 판단하며 내가 원하는 시선으로만 봐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소통'을 이야기하며 우선 나부터 '소통'을 위한 준비는 되었는지 반성해본다.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듣는 것'을 떠올리며 말이다.



그래도 난 '좋아요'가 좋다.



발화자의 의도와는 다른 이야기로 흘러버린 것 같기도 하지만, 
페이스북이라는 매체(플랫폼)을 바라보며 페이스북 상에서 말하는 '소통'은 무엇인지? 그 소통을 정리하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오래도록 고민해본 결과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셜미디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는 어쩌면 [소셜미디어를 '통해']라는 부분의 진정성에 대해 고민했고, 
"밖으로" 끄집어내기 전, 소셜미디어라는 틀 안에서 가질 수 있는 소통의 방식과 속단하고 포기해버릴 수도 있는 것들에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페이스북은 모든 커뮤니케이션 단계를 포함할 수 있는 플랫폼이고, 자유도가 상당히 높은 플랫폼이다.
반대로 자신이 원하는만큼의 '소통'을 선택하고 그것을 이루어나가기도 좋은 플랫폼이다.
나 자신이 페이스북에 '진정한 소통'을 원하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반문해본다.
이뺨저뺨, 선택과 집중, 역지사지, 책임... 소통하는 순간순간 한번씩은 떠올려보며 잊지말아야지.


잡다하게 긴 글의 결론을 내려본다.
플랫폼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소통'을 기대할 것!
페이스북에 대한 Intra Communication.  끝.


P.S :

그래도 난 '좋아요'가 좋다.

세상 참 복잡하고 지치는 일들 많잖아? 대뜸 '싫어요'를 팡팡 날려주고 싶은 일들 말이다.

쉬는 시간에까지 날세워 부정적인 것들을 생각하기보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타인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들어주고 인정해주는 것 아닌가?

나는 누군가의 손쉬운 클릭질 한번인 '좋아요'가 의외로 큰 힘이 되더라.

내가 받아온 작은 관심과 그 힘이 그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로 전달되길 바라며 '좋아요'를 꼬~옥 눌러본다.


P.S II :
글을 쓰면서 '기업들의 페이스북???' 이라는 생각들이 많이 스쳐간다.

참... 똥꼬가 아스트랄하게 옴찔거릴 이야기들도 많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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