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베지밀에 콩가루 타마실 극단적 캐릭터와 아스트랄한 상황전개가 주는 가족의 의미


고령화 가족, 천명관.

뭔가 심상치않아 보이는 표지 일러스트부터 쉽지 않을 것 같은 예상을 팍팍 풍겨준다.

왠걸... 첫장을 넘기자마자 시작되는 뒷통수 후려치는 상황은 그저 할말을 잃게 만들어주고, 한장 한장 넘어갈 때마다 점입가경의 상황전개는 할말을 잃게 만든다.

최근에 국내 작가들 중 좋아하던 작가들의 초기 모습을 닮아있으면서도 독특한 색깔이 선명하다.

내가 왜 이 작가를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을까?


그런데, 참 신기하다. 술술 읽힌다. 

흥미진진한 막장설계 상황도 그렇지만, 문체 자체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흐름을 닮아서인지 빠르게 책장이 넘어간다.

툭. 툭. 체념적이고 시니컬한 성격의 인모가 화자여서인지 몰라도 책을 읽으면서도 크게 감정이 밝아지거나 굴곡진 형태를 흘러가는 것도 아닌데, 술술 넘어간다.

절대 일반적이라는 기준에는 부합하지 못할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행동들은 가끔 상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난 판단을 하게되 만든다. 하지만, 왠지모를 재미가 엿보이고 그들의 다음 행동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캐릭터와 상황, 2가지의 힘과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난 존재가 가족을 되돌아보는 과정이 읽는 이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이다.



식구인가? 가족인가?


남편을 사고로 잃은 노모, 

전과 4범의 형 한모, 

쫄딱망한 영화감독 인모, 

2번의 이혼경력과 카페(?)를 운영하는 미연, 

그리고 미연의 발랄한(!) 딸 민경.


'어쩌다보니' 한 지붕 아래에 다시 모이게 된 가족들의 평균연령은 사십구세.

그들에게는 일반적인 가족들이 보여주는 애살맞은 모습은 보여지지 않고, 나이에 걸맞는 행동들도 보여지지 않는다.

행동 하나하나, 생각 하나하가 찌질하고 찌질하다.

사회의 통념적인 생활에서 벗어난 이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하모니(?)와 시너지는 상당하기 때문에 책장이 넘어갈수록 설마? 가 그럴수도 있지... 아! 이런 반전도 숨어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이런 상황 전개 속에서 내눈에 유독 심하게 걸린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식구'이다.

제목에서도 '가족'이라고 당당히 써놓고 있고, 가족과 식구가 뒤섞여서 쓰여지고는 있지만, 책의 초중반을 꿰뚫는 동안은 가족이라는 표현보단는 '식구'라는 말이 더 많이 쓰여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평균 나이 사십구세의 구성원들이 모여서 가장 가족스럽게 하는 행위가 엄마가 해주는 밥을 한 식탁에서 먹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든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는 신조로 나이만 먹고 스크라치 투성이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둥지로 돌아온 자식들을 거두어 먹이는 엄마의 모습만이 제대로된 가족의 모습일까? 그런 모성애가 그려지는 적당히 막장 수준의 소설일까? 라는 의구심을 품었다가는 식스센스 이상급으로 '우함마'에 뒷통수를 가격당할 것이다. 

먹는 것으로 '식구'라는 끈에 묶어볼려고해도 단순한 '식사' 이외에 엄마마저 말하지 못할 과거를 지니고 있으며, 그 역시 고령화 가족의 막장스러운 구성에 큰 축을 이룬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이 책의 의미는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식구마저도 되지 못할 정도의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이해하지 못할 캐릭터들임에도 싸우고 울분을 토해내며, 말하지 못했던 과거의 시간들을 이해해가는? 그리고 아주 조금은 가족다워지는 이야기가 엿보일랑말랑하는 것이다.


이걸 정말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다면 누가 배역을 맡을까? 라고 아주 심각하게 고민을 해보게도 만든다.

캐릭터만 살아있으면 정말이지 흥미 하나는 보장된 막장 스토리일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살아지고 살아간다.


뼈저리게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화자인 인모가 책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끝맺음하며 남기는 말이다. 

가장 증오하는 존재(우함마)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꼬이고 꼬여 죽도록 싫었던 삼류 에로영화를 찍으면서도 느즈막히 자신의 사랑도 찾아간다. 그리고 식구의 먹을 것과 어쨌든 가족이라는 그늘을 펼쳐주던 엄마의 죽음까지 경험하면서 인모는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막장스럽고 곡절많은 경험을 해서인지 캐서린과의 재회와 사랑에 눈을 떠서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사회부적응자에 냉소적이고 곧 죽어도 찌질함을 잃지 않았던 인모가 내린 결론이다.


다만, 모든 것이 타이밍이었고 캐서린과의 만남을 통해 살아갈려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는 것과 그럼으로써 많은 것들... 베지밀에 콩가루 타먹을 가족 구성원들의 각각의 삶에도 여유를 가진 시선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문득, 사회생활에 뒤채일 때 쯤 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이 생각났다. 

절묘한 호흡으로 아주 큰 여운을 남겨주셨던 말이지...

"살아봐라"




천명관. 그리고 영화


'고령화 가족'을 나에게 소개해준 사람도 '고래'를 극구 추천했다. 

그리고 스치듯 나에게 천명관을 이야기했던 베프 녀석도 내가 '고령화 가족'을 이야기하자 '고래'를 극구 추천했다.

하지만, 우연찮게도 나의 손에는 '유쾌한 하녀 마리사'가 들려있다.


천명관. 이 사람은 나에게 끝까지 아스트랄함으로 기억되려 하는가? 정주행을 계획한 나에게 이런 시련(?)을 던져주다니... 하지만, 순서는 조금 어긋나더라도 그의 소설들을 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가 말하는 극단적인 상황, 그저 희화된 모습으로만 넘기기에는 우리 일상의 단편을 아프게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전혀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았던 상황과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풀어내고 있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찌질하고 무력한 현실을 감추며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너의 속을 솔직히 드러내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 나도 찌질하고 무력한 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이 심하게 땡기고 공감했다.

하지만, 한모, 인모, 미연, 민경, 엄마... 식구가 가족이 되어가듯 살아지는게 아니라 살아가보면 또 무엇인가 다른 의미를 찾게 되겠지. 힘껏 살아가는게 중요하다. 천명관은 '고령화 가족'을 통해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대되는 영화화.


그리고 기대처럼 '고령화 가족'은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한모, 인모, 미연, 민경, 엄마... 배역을 보고 있노라면 소설속의 캐릭터들이 그대로 스크린으로 뛰어들 기세처럼 보인다.

5월 개봉 예정이라는데... 개봉만해라 당장 달려가줄테다. 내가 '퇴마록' 이후, 국내소설 원작 영화들은 극구 외면하며 살았지만, 너만은 꼭 봐야겠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