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서평, 박웅현이 보여준 진심의 힘
2009년에 출판된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를 다시 꺼내들어 읽었다. 책에서는 박웅현 ECD가 보여준 광고사례와 인터뷰에서 보여준 그의 태도를 통해 크리에이티브를 설명하고 그 근간이 되는 인문학에 대한 조명하려 시도한다. 인문학이 새롭게 조명받는 트렌드를 반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광고쟁이로 광고밥도 먹어본 입장에서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를 바라보면 역시나 와닿는게 조금은 다르다. 서평이라고 제목은 붙였지만 책을 보며 되새김한 생각들의 기록이 될 수도 있겠다.
너무나 당연한 말 들, 하지만 행동해야 당연할 수 있다
인터뷰어로 강창래씨가 촛점을 맞춘 것은 크리에이티브와 인문학의 연결고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예를 들고 비유를 들어 순차적으로 반복해서 잘 설명해준다. 하지만 광고라는 것을 조금 이해하지 못한다면 책에 쓰여진 내용들은 그냥 단순히 '당연한 말'이 되어 버릴수도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다. 옳은 말, 좋은 말을 하면 된다. 하지만 실제로 다른 회사에서도 그렇지만 광고에서 옳은 말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클라이언트는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AE(기획자)는 중간에서 조율하기 위해 인간 쿠션이 되기도 한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를 읽는 내도록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되게 했다', '만들었다'였다. 억울하면 니가 하던가? 라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일단 해놓은 사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명 받는 것이고 그렇기에 지금의 광고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가장 큰 오만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지금도 '알고 있는 것과 경험한 것'의 차이를 배워가고 있으면 '해놓고 이야기해라'를 실천하는 입장에서 그의 당연한 말들이 가지는 힘의 무게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박웅형 ECD, 진심의 코드
e-편한 세상의 "진심이 짓는다"라는 카피와 광고 캠페인이 이러한 맥락을 압축해서 표현해 줄 것 같다. 박웅형 ECD가 훌륭했던 점은 진심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법으로 인문학적 설득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구절절 팩트의 수치나 뜬구름 잡는 판타지 같은 감언이설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현상이나 공감코드를 잘 잡아냈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 무엇인가 새롭게 메세지를 억지스럽게 집어 넣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쉽게 공감하고 상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시작해서 하고싶은 말들을 툭하니 놓고 온다. (강백호의 풋내기슛과는 또 다르다.)
박웅형 ECD의 광고들는 보고나면 별반 특별할 것 없지만 다르게 생각하고 접근해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광고를 보는 사람들에게 속살일 뿐이다. 그의 광고들이 대부분 담담하고 조곤조곤하다는 것도 떠올려볼만 한 부분인데, 공감으로 사람들의 머리 속 바리케이트를 뚫고 들어가버린 다음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특히 강요하지 않는다. 맞다, 틀리다, 이래야 한다, 이게 좋다라는 판단이 아니라 그냥 이건 이래, 그런거야 라고 생각해보면 만들어준다. 그리고 울림이 된다.
그런 힘의 원천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라 하면 거창한 고서나 지식을 떠올리게 되지만 실상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가치와 공감을 찾아내는 것. 끝없는 관심과 관찰력, 그리고 관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론이 크리에이티브(creative)로 이어질 것이다.
박웅현 ECD에게서는 크리에이티브보다 진심과 상황에 대한 긍정적 관점과 해석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겸손하게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고급진 대처법과 의연함을 가지고 있음을 느겼다.
진심으로 일상을 바라보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 역시나 말은 쉽지만 행동하기는 여간 쉽지 않을 것이다.
광고를 좋아한다면 읽어볼만한 책
광고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관련된 일을 해오고 있어서 나에게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굉장히 흥미롭고 좋은 글 귀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을 광고를 모르는 사람에게 추천한다면? 조금은 어색하거나 쉽게 납득되지 못하는 부분들도 많을 것 같다. 나도 지금에서야 보이고 느끼게 되는 것들, 그리고 내가 해내지 못한 것들이 교차하기에 큰 공감을 얻은 책일지도 모른다.
광고와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인문학과 광고, 창의성이라는 단어들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만 내려놓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간만에 치열했던 광고학고, 광고쟁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줬고 구석에 먼지 쌓였던 몇 권의 아카이브도 다시 꺼내보고 만들어줬다. 무엇보다 인간과 상황을 바라보는 박웅현 ECD의 시선과 크리에이티브로 연결하고 행동력이 기억에 남는다. 나처럼 욱하고 답답해하지 않고 조곤조곤 스스로부터 안에서부터 설득과 납득을 반복한 모습은 기억에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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