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보통 사람들의 유쾌한 기적
1월의 마지막날 1월의 목표분량을 위해 준비해뒀던 책을 꺼내들었다. 히가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기적과 감동을 추리한다는 표지의 글에서는 조금 어색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용의자 X의 헌신을 통해 추리작가로 많이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는 책 좋아하는 친구가 생일 선물로 요청해서 당시까지 출판된 모든 책을 사준 기억이 있는 작가이다. 그리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만나는 첫 작품이라는 것은 함정카드다.
기묘한 이야기가 될 뻔한 유쾌한 상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조금 어리버리한 듯 보이는 3인조 절도범이 도망치는 것에서 시작된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차가 고장났고, 정말 우연치 않게 봐둔 폐가에 숨어들어가는 곳이 나미야 잡화점이다. 뭔가 묘한 분위기의 폐가에 숨어든 것까지는 좋은데, 40여년 전의 주간지가 있다는 것에서부터 을씨년스러운 흥미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의 전개는 손편지를 통한 과거와의 연결, 거기다 나미야씨가 생전에 했었던 편지 고민상담이 시작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미야 잡화점의 실내에서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 편지 주인공들의 삶이 이어지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잠시 스쳤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시 아무렇지 않게 나미야 잡화점 혹은 환광원을 중심고리로 연결된다.
사실 초반부의 전개만 놓고 보자면 위의 아저씨가 등장하는 기묘한 이야기 정도의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자칫 내용을 토막내면 그냥 기묘한 이야기의 한 편 정도라고 해도 될 귀신씌인 우체통 정도의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거기다 좀 더 복잡한 구성으로 인간관계와 인과관계를 설명한다. 조금씩 복선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퍼즐들이 자리를 잡아가는데 따듯한 시선과 결말들과 함께 기적이라는 단어가 참 적절하다는 느낌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연극 무대가 떠오르는 장면장면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경험은 연극 무대의 장면들이 자꾸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필요한 묘사는 있지만 너무 과하지 않은 장소의 선택, 그리고 이벤트가 일어나는 장소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적당히 한정된 공간에서 사람들의 이야기 사정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되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런 한정된 공간 때문인지 묘하게 크지 않은 연극무대에서 조금은 과장된 연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연극이나 영화화되지 않았지만 연출한다면 원작의 느낌을 잘 표현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책이 원작인 것은 책이 최우선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경우는 연극이 더 잘 어울리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 호흡에 다 읽고 난 뒤에 생각나서 다음에 시도해볼 것이지만 여기서 소개되는 비틀즈나 올드 팝송을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두고 읽어도 느낌이 괜찮을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으며 러브레터 O.S.T를 들었던 감흥이 살아날 것 같다.
각박한 세상, 미소짓게 되는 기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다 읽고난 후, 모든 퍼즐의 조각이 맞춰지고나면 뜬끔없는 시간의 왜곡과 같은 설정은 중요해지지 않는다. 기묘한 이야기에 나올 법한 귀신 씌인 것 같은 공간의 설정보다 그런 기묘한 설정 덕분에 듣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속사정, 남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에 대한 감상이 더 크게 남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익명으로 고민을 털어놓고 사람들의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앱도 등장했다.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시대적 배경에서는 손편지와 익명을 유지하기 위한 보안과 배려에 대한 감흥도 남다르다. 고민을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들어준다. 그리고 온마음을 다해 함께 고민하고 조언을 해준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맺는 좀도독 3인방이 장난처럼 시작해서 진지하게 변해가는 것은 손편지에 담는 정성과 진실함, 그리고 함께 타인이지만 함께 고민해준다는 책임감을 찾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나미야 유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도 이야기가 나오지만 휴대폰이 등장하고 문자나 카톡, 메일, 영상통화 등등 이야기를 나눌 방법은 다양하게 발전했고 부족하지 않게 즉각즉각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에서 이루어지는 고민상담처럼 심사숙고하고 작은 일에도 한번 더 고민하는 모습들도 발전했을까? 편리 속에 묻혀 사람내음을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끝까지 읽으면 개운한 미소가 지어진다. 기묘한 이야기 같은 발상으로 시작했지만 모두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나미야 유지라는 특별하지 않은 한 사람의 노력에서 시작됐고 누군가도 계기만 있다면 그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남겨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두가 힘들고 각박한 세상이다. 활용서, 실전서가 아니라 소설 한 권 읽으면 남들보다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짓누리고 있는 시대라는 생각도 든다. 그럴수록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같은 기분좋은 상상, 잘 짜여진 이야기, 그리고 딱히 멀리,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인생은 의미있고 기적같은 일이 될 수 있다는 상상과 여유를 가져봤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기분좋게 선물할 수 있는 책 한 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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