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추모앨범, LP 한정판으로 완성된 Welcome To The Real World
"고맙습니다. 기억하고 그리워하겠습니다" 오늘 배송된 신해철의 추모앨범인 웰컴투더리얼월드(Welcome To The Real World)를 풀면서 되뇌였던 말이다. 페이스북으로 아는 동생이 링크를 남겼을 때, 노트북을 꺼내고 페러럴즈를 띄우고 결재까지 진행하며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3000개 LP 한정판. LP 플레이어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재를 마치고서야 가격이 눈에 보였지만 결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 기뻤고 뇌가 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었다. 그리고 동갑내기 친구에게 아직도 결재가 되더란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6개월의 제작이 느껴지는 포장
오늘 볼 일이 있어 잠시 밖에 있을 때 택배가 도착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평소와는 다른 택배기사님의 문자를 받았다. '오늘 중에 꼭 확인 부탁드립니다' 사실 큰 박스를 방에 들여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뭔가 느낌이 심상치 않아 박스를 열었다. 큰 아이스박스에 밀봉되었고 뽁뽁이로 또한번 밀봉된 오동나무 상자가 나타났다. 뽁뽁이의 표면에는 습기가 있었다. 아! 오동나무의 특성상 너무 습해도 안되고 너무 건조해도 안되기 때문에 이런 포장을 했구나! 조금이라도 일찍 열어보길 잘했다는 생각과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책상에 올려본 Welcome To The Real World는 가슴을 벅차게 했다. 오동나무 케이스의 전면에 넥스트 2집부터 사용한 불새 로고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도 오동나무에 태닝으로 Welcome To The Real World를 새겨놓았다. 그나저나 대영에이브이를 들으며 친구와 그리움(?)에 빠지는 독특한 경험도 하게 됐다.
옆면은 NEXT와 Welcome To The Real World가 각각 새겨져 있다. 무엇인가 한창 시절 때의 넥스트를 떠올리게 만들기 충분하고 신해철의 개인활동과 함께 함께 넥스트의 비중을 높게 잡아가는 느낌이다.
잘 꾸며진 LP 4장과 부클릿, 그리고 사진들
그렇게 Welcome To The Real World의 문을 열었다. 사실 이때 까지만 해도 뭔가 독특한 느낌의 패키지라는 생각을 가졌다. 다 살펴보고 난 뒤의 느낌은 다르게 남았지만 말이다.
18% 그레이를 떠올리게 하는 첫번째 LP와 흰색의 LP2를 넘기다 순간 얼어 붙었다. 음원으로 따로 구입하여 듣고 있던 노래에 겹쳐 신해철의 사진이 나타났다.
LP1, LP2와 LP3, LP4 사이에 놓인 사진들과 부클릿. 생각지도 못한 구성이었고 보자마자 울컥해버렸다. 영정 사진으로도 쓰였던 사진이 순간 튀어나와 버렸기 때문이다.
딱히 소녀감성으로 방 여기저기에 붙여 놓을건 아니지만 종종 그의 중간 손가락을 그리워하며 꺼내보게 될 것 같기도 하다. LP 사이즈의 정성스럽게 출력된 정방형 사진은 묘하면서도 그리움이 묻어났다.
부클릿은 전체적인 블랙에 레드가 포인트를 가진다. 음원세대가 되어가면서 느끼기 힘든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넥스트 2집의 CD 구성은 기억이 나는데 말이다.
부클릿은 앨범 수록곡들의 리스트는 물론 가사까지 정성들여 편집되어 있었고 신해철의 사진들이 담뿍 담겨있었다. 노래방에서 눈치보며 부르던 민물장어의 꿈, 그 중의 한 소절이 이렇게 애절하게 다가오기도 하는구나.
무한궤도에서 가장 좋아했던 Myself와 넥스트 1,2집의 모습도 담겨있다. 또한번 신해철 때문에 엮였던 친구들이나 혼자서 테이프를 들으며 허세 떨던 어린 시절이 스쳐간다. 그런데 고맙다는 단어가 머리 속에서 계속해서 맴돈다.
그의 다양한 사진들과 가슴 뭉클한 마무리. 먹먹하면서도 벅차고 그냥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뭔가가 자꾸만 반복된다.
부클릿 안에는 넘버카드가 들어가있다. 3천장 한정판매가 떠올랐고 2848? 조금만 늦었다면? 이라는 생각이 아찔하게 스쳐갔다. 누군지 몰라도 1번과 3000번을 받은 사람이 슬며시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물욕이 줄어가지만 새삼 샘솟는 시셈이었다. 인정한다.
4장의 LP는 정성스럽다. 물론 앞 뒤로 담겨져 있는 트랙들은 더 정성스럽다. 나는 LP 플레이어가 없다. 어차피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소장용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간단한 LP플레이어를 구입하게만 될 것 같다. 먼 훗날 언젠가 내 자식이 이거뭐야? 라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LP를 꺼내들고 아빠가 가장 좋아했고 가장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라고 설명하면서 말이다.
신해철, 그를 가슴에 묻다
Welcome To The Real World LP 한정판은 선물 같았다. 미완성으로 남겨졌던 3곡을 포함해서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40곡의 트랙들로 꾸며져 있다. 물론 문득문득 그가 떠오를 때 꺼내보는 용도가 되겠지만 2015년 지름 목록에서 가장 후회없는 아이템이 되었다. 최단 시간 결재와 포장부터 하나하나 훑어보는 동안 이렇게 가슴벅찬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구매 가격 이상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사진을 찍고 일기겸 글을 남기기 위해 알아보니 하루만에 매진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다시찾은 Yes24의 구매페이지에 남겨진 리플들. 배송이 별로라서 패키지가 손상 입었다는 말들이 많았다. 오동나무? 왜 굳이 유통하기 힘든 오동나무를 사용했을까? 큰 아이스박스와 의도적으로 보이는 습기까지 포함하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니 신해철, 마왕, Crom, 그에게는 관이 없다.
Welcome To The Real World의 패키지를 닫으며 그를 가슴에 묻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한번 울컥할 수 밖에...
부족한 글로 그를 향한 그리움을 전부 표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은 행동으로 그렇게 그를 그리워하고 싶다. 한동안은 스쳐가다 생각날 때마다 먹먹함이 더 크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그리워하고 싶다. 조금 아니 너무 빨리 그리고 갑작스럽게 떠나버렸지만, 그립고 고맙다.
"고맙습니다. 기억하고 그리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