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테러 라이브, 현실의 단면을 긴장감 속에 도려내다.


여름의 극장가는 항상 뜨겁습니다.

시원스런 블럭버스터 영화들부터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영화들까지...

올해의 여름 극장가도 굵직한 영화들이 많았고, 그만큼 극장을 찾는 재미도 늘어났지요.

하지만, 그 중에서 나름 애매한 포지션에 위치한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하정우 주연의 '더 테러 라이브'가 아닐까 합니다. 블럭버스터라고 하기에는 뭔가 아쉽지만, 하정우의 물오른 연기와 긴박감이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더 테러 라이브를 보면서 참 잘만든 영화다 싶었고, 캐릭터가 잘 살아있고 사람들의 심리를 잘 쥐어짜는 부분들이 보여서 몇가지 관점에서 정리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영화내내 머리 속을 지배하게 되는 몇가지 전제들


더 테러 라이브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긴장감'입니다.

영화의 런닝타임이 실제 시간에 비견될 정도로 긴박하게 상황이 진행되고 과거 회상이나 미래에 대한 모습이 아닌 실시간으로 흘러가는 영화의 진행이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긴박감인 듯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긴박함에는 몇가지 전제들이 깔려 있기 때문에 영화의 몰입감을 높여주는데요. 그것은 오히려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머리 속을 은근히 지배하는 요소들이라 더욱 재미있는 시선을 보낼 수 있는 듯 합니다.


'라이브'

즉, 생방송이라는 소재가 주는 긴장감입니다. 생방송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 짜여진 시나리오는 있겠지만, 돌발상황도 있을 수 있고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실수하면 안된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라는 생각 속에서 주인공인 '윤영화가 어떤 반응을 할 것이고 어떻게 행동을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귀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영화에서 상당히 큰 비중으로 사람들의 머리 속을 지배하는 또다른 요소는 '윤영화가 귀에 꽂고 있는 리시버에 폭탄이 장착되어 있다'라는 전제입니다. 이게 왜 그렇게나 중요할까요? 

2가지 관점에서 접근해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윤영화의 행동을 제약하는 요소로써의 의미입니다. 자신의 목숨이 걸려있는 상황이 된다면 과연 몇이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영화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의 근원이 되기도 하고 뉴스앵커의 본분과 자신의 목숨을 건 상황에서의 줄타기하는 심리적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중요한 요소이죠. 

두번째는 관객들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어줍니다. 관객들은 이미 아는 요소이지만 극중에서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보는내도록 윤영화의 행동들을 납득하게 되고, 심리적 갈등에 동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함께 공유하기도 하는 것이죠. 거기다 영화중에 다른 앵커나 경찰청장의 리시버가 폭발하는 등의 모습이 스치면서 관객들의 머리 속에는 귓속에 폭탄이라는 족쇄가 엉켜붙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지수 앵커'

조금은 느슨해질 수 있는 윤영화에게 또하나의 족쇄가 걸립니다. 사이가 좋지않은 부인인 이지수 앵커. 테러범과의 통화 직후에 이지수 앵커와 통화를 시도하는 윤영화의 모습에서 이미 이지수 앵커는 눈에 보이는 복선으로 등장합니다. 윤영화가 이지수 앵커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팩트를 전달해야하는 앵커의 자리에서 개인적인 문제가 얽혔을 때 어떻게 대응할까? 개인적인 분노가 치밀어 올라 테러범과의 통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라는 생각을 머리 속에 심어놓습니다.


'스튜디오, 전화연결'

일상적으로 라디오를 들으면 소리만 들리기 때문에 전화연결이 청취자들과의 연결고리가 되고, 재미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상당한 제약이 될 수 있습니다. 스튜디오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긴박한 상황에 대한 진행은 전화로만 이어집니다. 상하관계, 갑과 을의 관계가 성립되어 버리는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죠.

그리고 더 테러 라이브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영활들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저는 꽤나 오래된 CUBE라는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기본적으로 밀폐된 공간이 주는 심리적 공포와 두려움을 전제로 여러가지 제약들이 강해지고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사람의 심리 변화. 더 테러 라이브도 스튜디오라는 상황과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심리적 제약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물론, 엑스페리먼트도 한정된 공간에서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고 거기에 맞춰 변화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나타내지만, 유독 CUBE가 떠오르더군요.

마포대교 폭발로 존재감을 두각시킨 테러범이었지만, 그의 존재감을 더 높여주고 긴장감을 높여주는 것은 언제든지 연락이 끊길 수 있다는 전화연결과 다른 방송사들과의 접촉도 가능하다는 또다른 가능성이 전제되어 영화 전반의 긴장감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몇 가지의 전제들은 하나만으로도 깊이있게 파고들면 영화 하나를 이끌어갈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지만,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점층적이고 유기적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들어앉아 느슨해질 수 있는 순간마다 돌아가며, 혹은 동시에 튀어나와 사람들을 다시 테러범의 손아귀로 되돌려놓는 것이죠.




캐릭터, 현실적이다. 그래서 더 화가난다.


라이브 뉴스 앵커였던 윤영화도 비리와 자기 성공을 먼저 생각하는 캐릭터입니다. 사람들에게 신용과 공증을 이미지로 깔고 시작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비리와 성공을 그리는 모습인 것이죠. 


거기다 윤영화보다 더한 방송국 국장이 등장하고, 방송과 방송을 지켜보는 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경찰청장이 나오며, 마포대교 위의 인질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벙커로 피신한 대통령, 그리고 그 사실을 숨기고 각자의 역할에만 충실하려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각 캐릭터들이 조금은 극적으로 표현되기는 했지만, 쉽게 파악될 수 있을 정도로 색깔을 뿜어냅니다.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드러나는 본연의 모습이며 각자의 이익과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모습이 여과없이 드러납니다. 


그냥... 

이 글을 쓰면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보안실장의 말을 몇 명이나 믿었을까요? 

"옆방에 서 대기중"

.......


머리 속에 심어놓아야했던 요소들 이외에 굳이 심어놓을 필요도 없었던 공감코드가 이렇게 드러납니다.

더테러 라이브가 조금은 아쉬운 플롯과 디테일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캐릭터가 뚜렷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누구나 예측할만한 행동 패턴들이 그대로 나타나 버리기 때문인 것이죠. 정치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행동패턴, 회사 임원이라는 사람의 성공법칙, 자신의 목적이 최우선이었던 보안실장...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이미 경험하거나 머리 속에 남아있는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될 뿐이니 말이죠.


거기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 말을 믿었던 윤영화는 어김없이 토사구팽 당합니다. 그들의 정치적 장치로 활용되고 꼬리자르기의 제물이 되고마는 것이지요. 국장의 성공 재료로 활용되었고, 정치인들의 명분에 놀아나고 맙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가고 자신의 명성과 모든 것을 차례차례 잃어버리는 것이죠. 목숨마저 담보된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지독한 현실, 그리고 상실감... 윤영화가 마지막 장면에서 보인 선택에 동정과 공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되는군요.


이렇게 더테러 라이브는 영화내도록 머리 속을 지배하며 긴장감을 높여주는 여러가지 장치들과 함께 아프도록 공감할만한 현실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본 뉴스가 국정조사에서의 '증인 선서'를 거부하는 모습이었으니... 오히려 테러범의 심정과 윤영화의 감정변화에 동조될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