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터처블 - 사람은 사람으로 채운다.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지인이 걸어둔 '언터처블'의 광고를 보게 되었고, 이거 볼만하겠는데? 라는 생각을 남겨둔다.
아는 동생(!)과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언터처블을 이야기했고, 어느순간 예매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배경으로 흐르는 September의 Earth, Wind, and Fire에 맞춰 보여지는 장면들...
플롯이고 뭐고를 떠나 그 속에 보이던 두 배우의 표정이 떠나지 않았고,
마세라티를 꺼내들고 엄청 신나게 떠들어대는 드리스의 표정에서 이 영화를 봐야만 하겠다고 결정하게 되었다.



1%가 비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1%의 우정???
언터처블은 우리나라에서 '1%의 우정'이란 부제를 붙여서 나왔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상위 1%의 필립과 하위 1%의 드리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장애우와의 우정'과 그 사이의 갈등? 정도의 플롯을 예상하게 한다. 
하지만, 이 부제를 보면서 조금은 작의적이고 우리나라스러운 마케팅 표현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영화를 보고나서도 이 부제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듯한 느낌으로 남는다.

이 영화는 신데렐라 스토리도 아니고 사회적인 기준의 1%가 가지는 의미보다 사람과 사람이 중심에 있었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1%라는 것은 기준은 결국 사회적 위상에 의한 것일 뿐이다.
필립과 드리스로 대표되지만, 누구나 자신의 위치가 되기 환경과 노력은 다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채워지는 것들과 비워지는 것들이 생겨난다.

필립은 상위 1%로 말해지는 것들을 얻기 위해 순수함과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잃어갔을 것이고,
드리스는 하위 1%로 지내게 되면서 노력의 댓가에 대한 회의와 체념이 몸에 베여가고 있었을 것이다.
'언터처블'은 그렇게 살아온 환경과 가진 것이  다른 두 남자가 만나 서로를 알아가며 채워가는 과정을 그려준다.


다른 두 사람... 때를 묻혀가다.
사회적으로는 안정적인 위치에 있지만 사고로 장애우가 되었고, 편견의 시선과 동정(pity)을 싫어하는 필립
친척에게 입양되어 프랑스로 오게 되었고, 배운것 가진것은 작지만 순수하게 자신만의 관점을 관철시키며 살아온 드리스.

그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삐걱거리고 부자연스러웠고, 그들이 가진 서로의 다른 환경들과 관점들은 때론 갈등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둘은 그 차이를 한쪽에서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배려하지 않고, 함께 받아들이고 그 시간을 공유한다.
드리스의 심하다 싶을 정도의 농담들과 조금은 무관심한 행동들은 나의 정서에서는 위험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앞서기도 했지만, 받아치는 필립의 유머와 둘의 대화가 점점 부러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때를 묻혀가며 그렇게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에게는 서로에게서 얻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거래'한다는 느낌보다는 시간을 함께하며 공유한다는 느낌이 전해졌고 영화이지만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때를 묻혀야 한데이... 그래야 점점 내것이 되는기라..."
언젠가 할머니께서 해주셨던 말이고 나이를 한살한살 먹을수록 점점 이해가 되는 말이다.
필립과 드리스... 서로에게 때를 묻혀가며 서로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모습들이 너무나 예쁘다.



깨알같은 재미로 보는내내 웃게 될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진지하고 긴장된 둘의 모습과 급하게 마세라티를 몰면서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집중시킨다.
하지만, 이내 둘의 유쾌한 내기!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드리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와 필립의 장단으로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어찌보면 영화의 큰 흐름과 특징을 제목이 올라가기 전 프롤로그에서 압축해서 다 보여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터처블'을 보는내내 머리 속에서 '아!!! 정말 깨알같다!!!" 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어설픈 복선으로 억지스러운 상황과 스토리텔링을 하는게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두었던 화면과 배경, 그리고 스쳐가던 대사 한마디가 웃음으로 되돌아오거나 갈등으로 발전하기도 하는 것
이다.
긴장과 이완.
갈등과 해소.
기승전결.
보통 하나의 큰 흐름과 플롯을 위해 집중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을 위해 흐름을 조금씩 희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터처블은 큰 기승전결을 이루며, 그 사이사이를 또다시 작은 긴장과 이완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깨알같은 작은 파고들이 모이면서 보는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집중하게 만들며 감성을 자극하다가 종국에는 큰 해일이 되어 먹먹하듯 따뜻하고 유쾌한 감정으로 쓸고 지난간다. 

주로 필립의 환경 속에서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드리스가 벌이는 장면들, 드리스이기에 질러댈 수 있는 허울들의 허상을 비꼬기도 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비교와 '사회적'이라는 울타리에 갇혀버린 순수와 진실성에 대한 물음도 또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 같다.


미쟝센과 연기력... 둘의 절묘한 결합!

이러한 깨알같은 즐거움의 원천은 감독의 디테일한 미쟝센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두 배우의 연기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필립 연기를 한 프랑수와 클루제와 드리스를 연기한 오마 사이... 그 둘의 대화와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상황에 빨려들어 함께 웃고 함께 진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표정 연기만으로 감정을 다 나타내어야 하는 필립의 절제된 듯 하면서 너무나 솔직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볼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설레였다.
그리고 속에는 수많은 아픔과 좌절이 있지만, 항상 심플하고 건강한 웃음을 내뿜는 드리스의 긍정에네지는 이유없이 동화되기에 충분했다. 

서로를 끍어대는 과정에서 장난과 말다툼도 있지만, 서로에게 다가서고 채워가는 과정이다.
또한, 어느덧 조금씩 서로에게 이끌여 변화하고 있는 과정을 깨알같이 묘사해준다.

지금껏 접했던 프랑스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했었던 점들이고, 오히려 '웰컴투 미스터 맥도날드'와 같이 일본 영화에서 보여지던 정적의 미학과 디테일한 묘사가 살아있어서 간만에 영화내도록 박수치고 소리내 웃으며 즐길 수 있었다.



절묘한 감성의 표현으로 기억되는 두 곡의 음악

<September - Earth, Wind & Fire>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고, 들을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이는 곡이 아닐까?
드리스가 아주 좋아하는 곡으로 나오기도 하고, 마세라티를 몰게되는 장면등에서 정말 절묘하게 그들의 흥에 겨운 모습을 대변해준다. '언터처블'에서 웃음과 즐거움으로 상징되는 감성을 대표해주는 곡인 듯하다.

<Nina Simon - Feeling Good>

영화가 종반으로 달려가면서...
갈등이 심화되어 잠시 멀어지게 된 필립과 드리스.
둘만이 채울 수 있었던 공간은 다른 누구도 채우지 못했고....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어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훌쩍 여행을 떠나는 장면에서 읊조리기 시작해서 드라이브하는 원경들과 함께 절묘하게 터져나오던 곡!
마치 영화 전체를 꿰뚫으며 둘의 감성과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희망을 조곤조곤히 읊조려주는 니나 사이몬 ...

더 많은 음악들이 '언터처블'을 채우고 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 두 곡의 음악은 한동안 깊게 남아있을 것 같다.




사람은 사람으로 채워진다.


깨알같은 장면들과 감동적인 음악들... 
하지만, 결국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진심과 서로를 채우는 모습에 '언터처블'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빈 공간은 결국 사람으로 채울 수 있고, 살아가며 그렇게 자신을 채워주는 사람들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근 주위에 일과 사람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지인들이 꽤나 있다.
이들에게 '언터처블'을 꼭 추천해주며 기분좋은 웃음과 사람의 채움에 대한 느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고 싶다.

오늘 밤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연락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