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만난 것은 지난해 이맘 때쯤 일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른 책들에게 우선 순위를 밀리고, 읽다 멈춘 상태로 그렇게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찬바람이 불고, 소설의 첫 부분에 나오는 듯... 눈이 쌓인 모습이 그리워지자
다시금 왠지 모르게 손이 가게 되었던 그 소설...
오랜 시간이 걸려 끝을 냈지만, 아직 내 속에서는 끝나지 않고 더 이어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남아있다.
'여름이었을 것이다. 샤워를 하다 문득, 이별이 인간을 힘들게 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고통보다도, 잠시나마 느껴본 삶의 느낌... 생활이 아닌 그 느낌...
비로소 살아 있다는 그 느낌과 헤어진 사실이 실은 괴로운 게 아닐까...'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中
20살의 방황 속에 스며든 사랑 이야기...
하지만, 여느 소설이나 영화처럼 일반적인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외모 지상주의에서는 소외된 존재로 인식될 못생긴 사람... 특히 여성의 외모에 대한 편견을 꼬집으며...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해준다.
특히, 위의 구절을 읽을 때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결국 인간의 추억은
열어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내용물이 담겨 있는 녹슨 상자와 같은 것이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中
다시금 기억난 '살아있다는 느낌'의 그리움과 함께... 이미 필터링된 '추억'들이 떠오른다.
잘못했었던 일들이 더 크게 남아 아픔을 던져주다가... 시간이 점점 희석시켜주며 남게되는 희미한 기억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힘일까?
힘든 것들도 점점 견딜 수 있게 즐거웠던 기억들만을 남겨둔다.
그 과정을 몇 번 거치는 동안,
뚜렷한 형상을 지닌 이미지들은 날아가고...
어렴풋한 아픔의 트라우마와 아름답고 소중했던 모습들이 느낌으로 남게된다.
그래서 잊고 지냈던 것이다...
새롭게 그 아픔의 느낌을 찾기보다는 녹슨 상자 속에 남겨두고 항상 행복한 느낌을 위해 열어보기 위해...
그렇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박민규의 다른 소설에서 안겨주던 '내질러주는 카타르시스'는 적었지만,
왠지모를 추억 속으로 나를 묘하게 이끌어간다.
분명, 내가 사랑했었던 사람들은 못생긴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내눈엔 그랬다 ^^*)
그 들의 마음 속에 담긴 마음을 키워가고 표현하는 방식에서 아직도 부족한 나의 사랑의 감정에 부끄러워해보기도 한다.
20살의 방황...
나의 20대 감수성을 지배했었던 하루키옹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많이 오버랩되기는 했지만,
박민규의 감성은 분명히 색달랐고, 세상에 대해선 시크했지만 자기 사랑에 충실했던 주인공을 통해
'진심'과 그것을 위한 '용기'는 자신의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랑 앞에... 솔직한 마음은 항상 부끄럽고, 한 걸음 만큼의 용기가 부족한 지금의 나에게...
풋풋한 홍조만큼 수줍게 속삭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어느 것이 진정한 이야기의 끝인지 끝까지 헷갈리게하는 책의 말미...
독자의 선택을 위한 배려인지... 단순한 트랩인지... 방관적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여운을 남기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배려일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갑합니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작가의 말 中
박민규... 그가 소설을 관통해 그가 직접적으로 전달해주고 싶은 최고의 메세지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래도 절 사랑해 줄건가요? ... 내가 아주 못생긴 여자라면 말이죠.' 라는 사랑하는 아내의 말에서 시작되었던 ? 와
그것에 대한 박민규의 대답인 듯한 소설에서...
나는 더 많은 ? 와 그에 대한 대답들을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루키즘이 지배하게 된 현실의 관념들... 그 속에서 소유욕인지 사랑인지를 잊어버린 시간들...
시각정보에 지배되어 선입견을 가지게 되고, 오히려 감성이 통하는 사람에게을 찾기 어렵게 된 현재...
사랑은... 둘이 나누는 '온기'이고 서로 손을 맞잡고 말없이 걸어도 서로가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라고
생각했었던 20대의 추억에 대한 회상을 깊게 남겨준다.
조금만 더 자신에게 솔직하고 감성이 마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솔직할 수 있는 자신이기를 바래본다.
<표지의 일부분으로 사용되었던 '왕녀 마르가리타' - 디에고 벨라스케스>
친구의 추천으로 '미장아빔'을 이해하기 위해 접했던 작품인데...
책의 말미의 연속되는 장면에서... 표지로 사용하게 된 이유가 납득되었다.